책소개
영문학사에서 낭만주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가 ≪서정담시집(Lyrical Ballads)≫(1798)을 합작해 발간한 1798년부터 월터 스콧 경(Sir Walter Scott, 1771∼1832)을 비롯한 주요 작가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않게 된 1832년까지를 가리킨다. 사실 낭만주의 시대는 정치사 면에서나 경제사 면에서 격동의 시대였다.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 특히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이념을 내걸었던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낭만주의 시인들은 ‘새로운 종류의 이념적 혁명’으로 받아들였고, 각자 다른 방식과 목소리로 이 혁명에 반응을 보였다. 블레이크와 워즈워스와 콜리지의 몇몇 시편들은 프랑스 혁명을 직접 소재로 삼았고, 많은 시인들은 프랑스 혁명이 고취한 희망과 공포 또는 혁명의 변질 과정에 대한 환멸의 분위기 속에서 작품을 썼던 것이다. 경제사 면에서도 당시 영국은 부와 권력이 주로 토지를 소유한 귀족 계급에 편중된 농업 위주 사회로부터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가들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 계급 중심의 근대적 산업 국가로 변모해 가던 상황이었다.
이런 격동의 시대에 워즈워스와 콜리지가 발간한 ≪서정담시집≫은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관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새 ‘시대정신’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시를 통해 맞서고자 했던 것은 당대의 지배적인 문예 사조였던 신고전주의의 문학·예술관이었다. 드라이든(Dryden)·포프(Pope)·존슨(Johnson) 같은 대표적인 신고전주의 시대(1660∼1798) 문인들은 양식·이성·규칙·억제·질서·세련미 등을 강조했으며, 이를 작품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시인의 임무는 개체가 아니라 종(種)을 조사하는 것이고 보편적 속성과 거시적 외관을 주시하는 것”이라고 말한 존슨에게서도 그런 관점의 중요한 측면이 드러나며, ‘틀림없는 자연’을 기준과 규칙으로 받아들이고 또 이성만이 다른 모든 능력과 맞먹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포프에게서 우리는 신고전주의 문학·예술관의 전형적 표현뿐만 아니라 근거까지 찾아볼 수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상상력은 창조적인 기능을 수행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장식적인 역할, 즉 정형화된 시어법을 통해 이미 알려진 진실에 기지(機智, wit)를 덧붙이는 일에만 국한된다.
그러나 워즈워스를 비롯한 낭만주의 시인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보편적 질서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내면이었고, 종래의 합리주의적 기계론에서는 단순한 도구로 여겼던 자연이 처음으로 생명을 지닌 자립적 존재로 기능할 수 있게 되었다. 워즈워스는 무엇보다도 이전 시대 시의 정형화된 시어법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를 골라” 일상생활에서 얻은 소재를 다루었다. 그 자신이 ≪서정담시집≫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가엾은 수전의 몽상>, <우린 일곱이에요>, <사이먼 리> 등 이 시집에 수록한 그의 많은 시편들의 목표는 ‘자연의 영속적인 아름다운 형상들’과 교류하는 평범한 시골 사람들의 생활에서 사건과 상황을 선택한 후, 여기에 상상력의 채색을 가함으로써 인간성의 기본적인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워즈워스는 무엇보다도 저절로 흘러넘치는 자신의 느낌들을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더욱이 산업 혁명으로 인한 악몽 같은 산업 도시에 위협을 느낀 워즈워스는 아름다운 경치의 중심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삶에 유익한 영적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서의 자연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그에게 자연은 영감의 원천이면서 종교의 대체물인 셈이었다. 다른 낭만주의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워즈워스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소중하게 여겼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일상적인 삶에서 경이감을 느끼고 또 새로운 감수성으로 그것을 찾아 나섰다.
200자평
1798년, 콜리지와 함께 ≪서정담시집≫을 발간해 영국 낭만주의 시대를 연 워즈워스. 그는 정치와 경제 혁명에 발맞추어, 문학 혁명을 일으켰다. 정형화된 시어법, 세련된 수식을 버리고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언어를 골라” 개인의 주관적 내면을 주시한다. 자연이 처음으로 생명을 지닌 자립적 존재로 기능하게 되었다.
지은이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1770년 4월 7일 영국 컴벌런드 호수 지방의 북서부 끝자락에 자리한 코커머스라는 유서 깊은 소도시에서 5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워즈워스는 펜리스에서 초등학교(여기서 그는 뒷날 아내가 될 메리 허친슨과 함께 공부했다)를 마친 후 코커머스 그래머스쿨에 입학했지만 채 여덟 살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열세 살 때인 1783년, 그의 아버지 또한 세상을 떠났다. 조실부모의 경험과 아끼던 누이동생 도로시와 이별한 경험으로 인해 그는 뒷날 자신의 시에서 빈번히 가족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1787년에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세인트존스칼리지에 입학했지만, 정규 교과과정보다는 선배 시인들의 시를 읽고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일에 더 열중했다. 1790년에 그와 벗 로버트 존스는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까지 여행했는데,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 여행 경험은 ≪서곡≫ 6권에서 상세히 서술된다. 대학 졸업 후 두 사람은 북웨일스를 거쳐 멋진 경관으로 널리 알려진 와이 강 계곡까지 걸어서 여행했다. 1791년 11월 워즈워스는 혁명의 열기에 휩싸여 있던 프랑스로 건너갔다. 혁명 지지자였지만 왕당파 지지자들과도 어울렸고, 아네트 발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1792년 10월 말 프랑스를 떠나 12월 말에 영국에 도착했고, 그사이(12월 15일)에 두 사람의 딸 캐롤라인이 태어났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선언한 상황에서 워즈워스는 발롱과 결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했지만, 이후에도 그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795년 혹스헤드 그래머스쿨 시절의 벗의 동생인 레이슬리 칼버트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유산으로 남겨 준 900파운드 덕분에 그의 경제적 여건은 훨씬 나아졌다. 워즈워스와 도로시는 도싯 주 레이스다운으로 이주했고, 그는 이미 1793년에 알프스 산맥 도보 여행이 배경이 된 ≪저녁 산책≫과 ≪소묘≫를 발간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아 가던 중이었다. 그는 이 시집들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2∼1834)와 로버트 사우디(1774∼1843) 같은 시인들과 유니테리언파 신자인 출판업자 조지프 코틀을 브리스톨에서 만났다. 1797년 6월 자신들의 집을 방문해 몇 주간 머문 콜리지에게 호감을 느낀 워즈워스 남매는 당시 콜리지가 살던 네더스토이에 가까운 서머싯의 알폭스덴하우스로 이주했고, 두 시인은 ≪서정담시집≫을 합작해 발간할 계획을 세웠다. 1798년 워즈워스는 도로시와 함께 와이 계곡을 다시 찾았는데, 이때의 경험은 널리 알려진 <틴턴 수도원…>으로 결실을 맺었다. 워즈워스가 브리스톨로 돌아온 직후 쓴 이 시가 포함된 ≪서정담시집≫은 1798년 9월 코틀의 도움으로 익명으로 발간되었고, 두 시인의 ‘창조적 공생’의 성공적인 결실인 이 시집은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서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정담시집≫이 발간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워즈워스 남매는 콜리지와 함께 배를 타고 독일로 갔고, 워즈워스 남매는 작센 주의 고즐라에, 콜리지는 괴팅겐에 머물렀다. 도로시와 함께 혹독한 겨울을 고즐라에서 보내는 동안 워즈워스는 이른바 ‘루시 시편들’과 대표작이 될 ≪서곡≫ 1∼2부를 썼다. 이듬해 봄에 귀국한 워즈워스 남매는 1799년 12월 그라스미어의 더브코티지로 이주했는데, 이 집이 그가 호수 지방에서 거주하게 될 세 집 중 첫 집이었다. 이곳에서 지낸 8년은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생산적인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그는 ≪서정담시집≫ 2권을 추가했고, 이 시집은 여러 번 판을 거듭했다. 또 1805년에는 13권으로 구성된 자전적 장시인 ≪서곡≫을 완성했고, 또 다른 장시인 ≪소요≫를 쓰기 시작했으며, 1807년에는 ≪합본 시집≫을 발간했다. 1802년에 메리 허친슨과 결혼한 워즈워스는 1803년부터 1806년 사이에 세 자녀를 낳았다. 도로시의 생생하고 매혹적인 일기들은 이 행복했던 더브코티지 시절을 다루고 있다. 1808년부터 1811년까지 3년간 워즈워스 일가는 앨런뱅크에 거주했고, 이곳에서 자녀 두 명이 더 태어났다. 1813년에 워즈워스 일가는 앰블사이드와 그라스미어 사이의 라이덜마운트로 이주했고, 워즈워스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 거주했다.
1814년에 워즈워스는 장시 ≪소요≫를 발간했고, 첫 두 시집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 다른 시집들도 뒤따랐다. 1820년대부터 그의 명성은 점차 높아졌고, 성공의 보상들이 잇따랐다. 그는 1838년에는 더럼대학교로부터, 1839년에는 옥스퍼드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옥스퍼드대학교 학위 수여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843년에 사우디의 뒤를 이어 영국의 계관시인으로 임명된 그는 1850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라스미어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는 13권으로 구성된 1805년본 ≪서곡≫을 생전에 발간하지 않고 평생 동안 끊임없이 다듬어 14권으로 재편성했는데, 그의 사후 아내 메리 허친슨은 이 1850년본 ≪서곡≫을 처음으로 독자들 앞에 내놓았다.
옮긴이
윤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배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영문과에서 풀브라이트 방문학자(1992∼1993)로 연구했으며, 한국현대영어영문학회 제1회 우수논문상(2005)을 수상했다. 콜리지와 워즈워스를 비롯한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과 현대 영미 시인들에 관한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해 왔고, 한국현대영미시학회장(2011∼2012)과 한국현대영어영문학회장(2011∼2013)으로 일했으며, 저서로 ≪콜리지의 시 연구≫(2001), 역서로 ≪문학과 인간의 이미지≫(1983), ≪거상−실비아 플라스 시선≫(공역, 1986), ≪영문학사(제4개정판)≫(공역, 1992), ≪Who’s Who in Korean Literature≫(공동 영역, 1996), ≪티베트 원정기≫(공역, 2006), ≪영미시의 길잡이≫(2007), ≪티베트 순례자≫(공역, 2007), ≪영문학의 길잡이≫(2008), ≪마지막 탐험가−스벤 헤딘 자서전≫(공역, 2010), ≪콜리지 시선≫(2012) 등이 있다.
차례
가엾은 수전의 몽상
동물적 평온함과 쇠잔함
누이에게
초봄에 지은 시
우린 일곱이에요
사이먼 리
충고와 대답
돌려놓은 탁자
틴턴 수도원에서 수마일 떨어진 상류 지점에서 지은 시 – 1798년 7월 13일, 여행 중에 와이 강둑을 다시 찾았을 때
개암 따기
문득 북받치는 슬픔을 나는 느꼈네
그녀는 인적 없는 곳에 거주했네
3년을 그녀는 햇살과 소나기 속에서 자랐네
선잠이 내 정신을 봉해 버렸네
모르는 사람들 사이를 나는 돌아다녔네
루시 그레이
4월의 두 아침
뻐꾸기에게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네
1801년(‘나는 보나파르트를 애통해했다’)
결의와 자립
웨스트민스터 교(橋)에서, 1802년 9월 3일
고요하고 상쾌한 아름다운 저녁이어라
런던에서, 1802년 9월
런던, 1802년
베네치아공화국의 멸망에 부쳐
수녀들은 수녀원의 비좁은 방에 불만이 없고
우리는 너무 속세에 물들어 버렸네
의무에 부치는 송가
송가−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얻은 불멸성의 암시
한 조각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다가
그녀는 기쁨의 화신
서쪽으로 걸어가다가
홀로 추수하는 처녀
비가(悲歌)
갑작스러운 기쁨에
더든 강
케임브리지대학교 킹스칼리지 채플 안에서
변화
종달새에게
소네트를 깔보지 마오
증기선, 고가교, 철도
눈을 들지 않고 천천히 땅 위를 걷는 건 정말 기분 좋구나
제임스 혹의 부고를 접하고 쓴 즉흥시
≪서곡≫(1850)
오, 축복 있구나 이 온화한 미풍에
내 영혼은 멋진 파종기를 맞았고
어느 여름날 저녁
위낸더의 소년
생플롱 고갯길
시간의 점
스노던 산 등정
부록 ≪서정담시집≫(1802) 서문(초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누이에게
3월 들어 처음으로 포근한 날.
시시각각 더 상쾌해지고,
문 옆의 키 큰 낙엽송에서
붉은가슴울새는 노래하는구나.
공중엔 행복한 기운이 서려 있어,
벌거벗은 나무들, 민둥산,
녹색 들판의 풀들에
기쁨의 느낌을 주는 것 같구나.
누이여! (바라건대)
아침 식사가 끝났으니,
아침 일과는 내버려 두고 서둘러
이리 나와 햇살을 느껴 보렴.
에드워드도 따라올 테지.−그러니 제발
서둘러 산책복으로 갈아입어라.
책은 가져오지 마라. 오늘만은
빈둥거리며 보내자꾸나.
기쁨 없는 어떤 예식도
우리의 살아 있는 달력을 규제하지는 못하리라.
벗이여, 오늘부터 우리는
한 해를 새로 시작하자.
이제는 온 누리에 태어난 사랑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땅으로부터 사람으로,
사람으로부터 땅으로 몰래 스며드는 중.
−지금은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
지금 한순간은 애써 궁리한 몇 해보다
더 많은 걸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법.
우리 마음은 기공(氣孔) 하나하나에서
이 계절의 기운을 들이마시리라.
우리 가슴은 무언의 율법을 만들어
오래도록 따르리라.
다가올 해를 위해 바로 오늘에서
우리의 기질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여기저기 위아래로 구르는
그 행복한 힘으로
우리 영혼의 가락을 빚어 보자,
영혼이 사랑에 조율되도록.
그러니 오라, 누이여! 오라, 제발,
서둘러 산책복으로 갈아입어라.
책은 가져오지 마라. 오늘만은
빈둥거리며 보내자꾸나.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네.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니,
늙어서도 그러하기를.
아니면 차라리 죽게 해 다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나의 나날들이
자연에 대한 경애(敬愛)로 묶여 있기를.
·변화
변함없는 화음을 지닌 장엄한 곡조의 음계를 따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소멸은 기어올랐다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그것은 범죄나 탐욕이나 쓸데없는 근심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듣기 좋지만 우울한 화음.
진리는 변함없다. 하지만 가장 오래도록 살아남는
그 외적 형상들도 아침에 언덕과 평원을 하얗게 만들고는
더는 흔적도 없는 흰 서리마냥
녹고, 당당하게 잡초들의 왕관을 썼지만
적막한 허공을 가르는 어떤 우연한 외침이나
시간의 믿기 어려운 손길을
견디지도 못하는 어제의
웅장한 탑처럼 쓰러진다.
·한 조각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다가
골짜기와 언덕 위로 높이 떠다니는
한 조각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다가
문득 나는 보았네 한 무리,
무수한 금빛 수선화들이
호숫가 나무 아래
산들바람에 한들한들 춤추는 것을.
은하수에서 빛나며
반짝거리는 별들처럼 이어져
수선화들은 만(灣) 가장자리를 따라
끝없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네.
고개를 까딱이며 활기차게 춤추는
만 송이 수선화를 언뜻 나는 보았네.
곁에 있는 물결도 춤췄지만, 반짝이는 물결도
수선화의 환희를 당해 내진 못했네.
이토록 명랑한 무리와 함께 있으니
시인이 어찌 흥겹지 않으랴.
지켜보고 또 지켜보았지만, 미처 몰랐네
이 광경이 내게 얼마나 값진 것을 안겨 주었는지.
종종 멍하니 아니면 생각에 잠겨
침상에 누워 있노라면
고독의 축복인 그 마음의 눈에
수선화들 문득 번뜩이기에.
그럴 때면 내 가슴 즐거움으로 가득 차
수선화들과 함께 춤추기에.